200번의 채용 인터뷰를 통해 얻은 것들

Hyokun Yun
5 min readJul 1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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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제 글은 제가 다니는 회사의 입장을 대표하지 않습니다.)

내가 다니는 회사의 채용 인터뷰 시스템에서는 각각의 인터뷰어를 표시할 때 그가 회사를 얼마나 오래 다녔고 몇 번의 인터뷰를 했는지를 함께 보여준다. 그 이유에 대해서 직접적인 설명을 들은 적은 없지만, 아무래도 의견을 취합할 때 어떤 의견을 제시한 사람이 얼마나 숙련된 인터뷰어인지를 감안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한다. 나는 지금의 회사를 다니기 시작한지 5년이 되었는데, 이제까지 200번 조금 넘게 인터뷰를 했다. 평균보다는 많이 한 편이라고 생각하고, 지난 분기에서는 수백명 단위의 조직에서 가장 인터뷰를 많이 한 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했지만, 나보다 인터뷰를 훨씬 많이 한 괴물(?)들을 만나는 것도 드문 일은 아니다.

인터뷰 횟수가 100번, 250번, 500번 등을 넘길 때마다 회사 프로필 페이지에 새로운 뱃지를 달아 주는데, 250번 뱃지를 받을 날을 고대하고 있는 중이다. 그 외에 그다지 직접적인 보상은 없다. 물론 채용은 중요한 업무 중의 하나이고, 회사의 핵심 원칙인 Leadership Principles에도 Hire and Develop the Best가 포함되어 있으며, 나는 매니저가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승진 심사에도 인터뷰 활동이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자신에게 보상이 돌아오기를 기대하기보다는 회사의 인력풀이 향상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렇지만 200번 넘게 인터뷰를 하고 나서 돌아보니 생각보다 인터뷰를 통해 얻은 것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채용 시스템은 미국과는 좀 다를 것 같아서 한글로 이런 글을 적는 것이 얼마나 유용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위에 미국에서 일하는 한국인들도 제법 있으니 어떤 장점들을 경험했는지 적고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독려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스스로에게 가장 확연하게 느껴지는 변화는 낯선 사람과 영어로 대화하는 것에 자신감이 붙었다는 것이다. 나는 영어가 많이 서툴고 입사 초기에는 그것에 적잖은 자격지심까지 느끼고 있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적잖은 부담을 느꼈었다. 특히 전화 인터뷰에서는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영어를 알아듣기도 더 힘들고 표정이나 손짓, 혹은 칠판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어서 더더욱 스트레스를 받았다. 전화 인터뷰를 하는 날이면 삼십분 전부터 마음이 초조해졌던 것 같다. 그런데 아무래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인터뷰를 많이 하다 보니 생각보다 금방 침착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기엔 몇가지 대화의 기술을 개발하게 된 것도 한 몫을 한 것 같다. 예를 들어,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심각한 대화부터 꺼내기보다는, 오늘의 날씨와 같은 가벼운 주제를 갖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 과학적인 근거는 없지만 서로에게 있어 두뇌가 상대의 억양에 적응할 시간이 조금 필요해서가 아닌가 추측한다. 인터뷰를 시작하자 마자 심각한 대화로 바로 들어가면, 초기에 상대의 중요한 발언을 제대로 캐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아직 인터뷰 경험이 많지 않던 시절에는 이런 상황이 생기면 적잖이 당황했기에 더더욱 먼저 상대의 억양에 적응하는 과정이 중요했다.

내가 개발한 또다른 테크닉은 상대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을 때 “방금 무슨 말을 하신거죠?"라고 되묻기보다는 “제 생각에 당신은 A는 B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맞나요?”라는 식으로 내가 추측한 바를 전달하는 것이다. 상대가 어떤 말을 했을때 억양 때문이건 아니면 내가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건 알아듣지 못했다면, 그가 같은 말을 반복했을 때 내가 그것을 알아들을 확률은 높지 않다. 그런데 내게 익숙한 A나 B와 같은 용어들로 물어보면, 상대도 그 용어들과 자주 함께 사용되는, 내게 익숙한 용어들로 설명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로 “A는 B다"라고 얘기하는 거였는데 상대가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는 거였으면 금상첨화지만, “C는 D다"처럼 완전히 다른 얘기였어도 최소한 “A는 B다"라는 얘기는 아니라는 걸 확인했으니 최소한의 진전은 이루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은 영어 실력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대화의 기술을 향상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200번이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말이 너무 빠른 사람도 너무 느린 사람도 만나고, 지나치게 디테일에 집착하는 사람도 자꾸 뜬구름 잡는 얘기만 하는 사람도 만나며, 기대치보다 훨씬 잘하는 사람도 이런 사람을 왜 데려왔지 싶은 사람도 만난다. 그런데 인터뷰란 1시간 남짓의 짧은 시간 동안에 채용이라는 중요한 의사 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반드시 수집해내야만 하는 critical mission이기 때문에, 늘 긴장감을 갖고 어떻게든 대화를 생산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려고 노력하다 보니 상대의 특징을 빠르게 파악하고 그에 맞춰서 대화하는 능력이 좋아진 것 같다.

이런 대화의 기술들은 평상시 회의를 할 때에도 물론 큰 도움이 된다. 보통의 회의와는 달리 인터뷰는 사전에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며 어느 정도 준비가 가능하고, 또 인터뷰어로서 내게 상당한 주도권이 주어져 있기 때문에, 이런 측면에서는 보통의 회의보다 난이도가 낮다고 볼 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좋은 성장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면 인터뷰어들끼리 채용을 결정하기 위한 회의를 하는데, 매우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의견이 강하게 엇갈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때 어떻게 토론을 통해 의견의 차이를 좁혀나가야 하는지 스스로 미팅을 주도하며 경험을 쌓을 수도 있고, 좀 더 원숙한 사람이 주도하는 것을 보며 그 사람의 테크닉을 흡수할 수도 있어서 이 역시 매우 좋은 기회이다.

이렇게 글을 쓰고 보니 마치 스스로가 대단한 소통 능력을 가진 것처럼 얘기한 것 같아서 부끄러움이 든다. 실제로는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아서 자책하며 괴로워하는 일이 빈번하다. 그렇지만 적어도 처음 입사했을 때의 자신에 비해 지금의 나는 채용 인터뷰에 있어서나 일반적인 회의에 있어서나 훨씬 생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고, 그것은 비록 당장은 눈앞의 업무가 지연되게 만드는 채용 인터뷰 요청을 마다하지 않고 200번이나 수락하고 또 좋은 인터뷰를 하기 위해 고민한 덕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성취에 대해서는 적잖은 자부심을 갖고 있다. 성실하게 일하는 것은 자주 뜻하지 않은 성장의 기회를 이렇게 가져다주고, 그래서 어떤 업무든 항상 높은 스탠다드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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